컴퓨터 의자를 사려고 외출했다가 사람 한 명 살린 이야기

오늘 나는 사람을 한 명 살렸다.
별일 없이 지나갔으니 별거 아닌 이야기이지만, 오늘 내가 만약 그곳에 없었더라면 정말 사람 한 명 죽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 글을 남겨본다.




컴퓨터 의자를 사러 외출을 했다.


얼마 전부터 고민을 했다.
'집에서 컴퓨터를 쓸 때 앉는 의자를 새로 살까 말까..'
지금 사용하는 컴퓨터 의자가 사용한지 10년은 더 지난 녀석이라 여러가지로 불편한 점이 많이 생겼다.
몇 해 전부터 플라스틱 바퀴가 깨져서 파편들이 떨어져 나가기 시작했고, 앉을 때나 일어날 때 혹은 등을 기댈 때 소음도 나기 시작했고, 무엇보다 엉덩이와 허리가 편하지 않았다.
다른 좋은 의자에 앉아보지 못했다면 우리집 의자의 문제점도 모른 채 그냥 몸이 적응하면서 계속 썼을지도 모르지만 작년 말부터 다녔던 코딩 학원의 의자가 너무 편했었다.


몇 주 전부터 의자를 인터넷으로 아이쇼핑도 해보고 유튜브로 의자 추천 영상들도 찾아봤다.
결론은 직접 앉아보고 사는 수 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나는 오프라인 매장에서 의자를 구매해본 적이 없다.
그래서 그런 컴퓨터 할 때 쓰는 사무용 의자나 게이밍 의자를 파는 오프라인 매장이 내가 살고 있는 광주에 존재하는지의 여부를 몰랐다.
그런데 양동시장 부근에서 좀 허름한 매장이었지만 의자만 파는 것 같은 매장을 봤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래서 오늘 그곳을 가보려고 외출 준비를 하면서 TV를 보고 있었는데, 지역 방송 광고로 광주의 GSB 금실방이라는 가구 전문 매장의 광고가 갑자기 흘러나왔다.
'맞다. 저런 곳도 있었지?'
한 번도 가보지는 않았지만 알고는 있는 매장이었다.
내가 원래 가려고 생각했던 양동시장과 멀지 않은 편이니 여기도 저기도 다 가보자고 생각하고 출발했다.


요즘 추워지고 있는 날씨에 일주일 이상을 타지 않고 가만히 세워둔 스쿠터에 시동을 걸려고 하니 시동이 한번에 걸리지 않아서 약 5분 이상 씨름을 했다.




GSB 금실방으로


광주 GSB 금실방의 전경

GSB 금실방부터 갔다.
건물 외부는 좀 허름했지만, 내부에는 괜찮아 보이는 의자들이 꽤 많았다.
매장 직원 여성분께서도 과하지 않게 적당히 친절해서 마음이 편했다.
직원이 계속 내 옆에 붙어있는게 아니라 혼자서 여러 의자들을 편하게 구경하도록 내버려두셨다가 적절한 타이밍에 한번씩 말을 걸어오셨다.


내부의 사진은 찍지 못했다.
사무용 의자들은 있지만 게이밍 의자 같은건 없다.
의자는 앉아보고 사야 하니 앉아보았다.
그런데 처음 앉아본 의자부터가 40만 원짜리라니..
최근에 의자 검색해보면서 요즘 의자들의 가격에 깜짝 놀랐긴 했었다.
GSB 금실방 안에서는 14만 원짜리 의자를 하나 찜해놨다.
다른 제품들에 비해서는 상대적으로 괜찮은 가격에 허리가 정말 편했다.


하지만 처음 들어가 본 매장에서 바로 구매하기는 뭐해서 직원 여성분께 다른 곳도 둘러보겠다며 나왔다.
그리고 양동시장 쪽으로 향했다.





욕심이 없는 가게 주인 할아버지


양동시장 쪽에서는 겉에서만 봐도 들어갈만한 매장이 없었다.
정말 완전 '그냥 의자'만 파는 가게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마지막 희망인 매장으로 들어가 보았다.
예전에 지나가다가 봤었다던 그 매장이었는데 여기는 사무용 의자들도 보였다.


매장에 들어가서 주인으로 보이는 할아버지에게 의자를 좀 보러 왔다고 말했다.
그리고 내가 원하는 의자의 특징을 설명해줬다.
그런데 나는 그 매장 안에서 의자를 2~3개 정도 밖에 앉아보지 못하고 30분 이상 가만히 서서 그 할아버지께서 혼자서 신나서 떠드는 것을 듣고 있을 수 밖에 없었다.


초반에 대화 중에 허리가 편한 의자를 찾는다는 말을 했다가 그 할아버지께서 혼자서 허리 건강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을 듣고 있게 된 거다.
'비싸다고 다 좋은 의자가 아니다', '허리가 편한 의자를 찾으려면 이런 의자를 찾아야 한다', '예전에 대학교 교수인 손님이 의자를 사러 왔는데 원래 쓰던 의자도 100만 원이 넘는 의자였다고 하는데 본인이 추천해준 10만 원대의 의자로 바꾸고 더 이상 허리 안 아프다고 하신다' 등등.. 그러면서 뭔 허리 스트레칭 동작을 알려주시고...
또 다른 손님에게도 꼭 맞는 의자를 추천해준 썰을 풀고.. 본인이 20년인가 30년인가 의자만 파셔서 그쪽으로는 박사라고.. 어디서 강연도 하셨다고 하시며..


어쨌든 틀린 말은 아닌 거 같고 좋은 이야기 같은데.. 난 빨리 이 의자 저 의자 앉아보고 마음에 드는 의자를 찾으러 다니고 싶었다.
처음에는 할아버지의 이야기에 거짓 리액션을 날려줬었는데 이젠 점점 지쳐서 빨리 이 가게를 나가고 싶어졌다.
이렇게 시간을 날릴 바에는 처음에 그 14만 원짜리 의자를 바로 사는 것이 더 싸게 먹혔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을 때에는 어서 GSB 금실방에 다시 가서 나의 14만 원짜리 의자를 데려오고 싶었다.
그 할아버지 덕분에 나는 GSB 금실방에서 찜해뒀던 의자가 나에게는 최고의 의자였음을 깨닫게 되었고, 대화를 할 상대가 생겨서 즐거워 보이는 할아버지의 말을 끊기가 미안해서 기회만 엿보다가 어느새 타이밍이 왔을 때 그 매장을 빠져나왔다.


다시 GSB 금실방으로 갔다.
GSB 금실방의 직원 여성분을 보자 괜히 반가웠다.
그냥 아까 그 의자를 사러 왔다고 말하는 나의 텐션이 아까 처음 매장을 방문했을 때보다 높았을지도 모른다.
만약 그랬다면 매장 여성분께서 속으로 놀라셨을지도 모른다.




사람 살린 이야기


매장에서 결제를 마치고 광주의 시내인 충장로로 나왔다.
약국에 가서 약도 사고, 은행에서 볼 일도 보고, 다이소에서 방석 구경을 좀 하다가 나왔다.
그리고 슬슬 집으로 들어가려고 내가 스쿠터를 세워놓은 곳으로 갔다.
스쿠터를 세워놓은 장소는 시내 치고는 많은 사람들이 지나다니지 않는 곳이다.
내 스쿠터 근처에는 어떤 20대 여성분 한명이 손에는 테이크아웃한 음료들을 몇 잔 들고 택시를 잡으려는 듯한 느낌으로 서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 여성분 근처에서 스쿠터에 시동을 걸려고 하면서 무심코 그 여성분 쪽을 보았다.


그런데 웬 로젠택배 트럭 한대가 그 여성분을 향해서 후진을 해오고 있었다.
어떤 상황이었냐면, 그 여성분도 나처럼 이어폰을 꽂고 음악이라도 듣고 있었던 건지.. 트럭이 다가오는 것을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는데, 트럭은 그 여성분과 1미터도 떨어지지 않는 거리에서 그 여성분을 향해 천천히 후진을 하고 있었다.
트럭도 그 여성분도 서로 등을 지고 있었다. 그 여성분은 트럭의 바로 뒤에 서있었기 때문에 백미러로 절대 그 여성분이 보일리가 없는 사각지대였다.


그 몇 초의 찰나의 순간을 보자 순간 말도 안나왔다.
그 트럭은 정말 잠시 후면 그 여성분과 부딪칠 것 같은 모습으로 후진을 계속 하고 있었다.
순간 큰 목소리 내는거 정말 싫어하는 나는 그 여성분에게 손짓을 하면서 빨리 피하라고 소리 쳤고, 그 여성분은 그제서야 뒤를 돌아보고 트럭을 피했다.
만약 쳤다고 해도 사망 사고로까지는 이어지지 않았을지도 모르지만, 혹시 모르는 일이다.
그 트럭 운전사는 무슨 인도에서 운전을 그딴식으로 하는지 욕이라도 하고 싶었다.


어쨌든 내가 GSB 금실방 TV 광고를 못 보고 거길 가지 않았다면,
출발할 때 스쿠터에 시동을 한번에 걸었다면,
처음 본 의자를 바로 구입해서 양동시장의 그 할아버지 가게를 안 갔다면,
할아버지가 나에게 그렇게 수다를 떨지 않았다면,
다시 GSB 금실방을 가지 않았다면,
시내에서 약국을 가지 않았다면, 은행을 가지 않았다면, 다이소를 가지 않았다면, 아까 그 여성분이 서있었던 곳에 나는 없었을 거다.
그렇게 생각하니 뿌듯했다.


그 할아버지에게 붙잡혀 있었던 30분 정도의 시간도 아깝게 느껴지지 않았다.
무엇보다 좋은 쇼핑을 하는데 도움을 준 나이스 타이밍 TV 광고와 그 수다 할아버지에게 참 감사한 느낌이었다.


분명 사람 살린 이야기라고 시작하면서 글을 쓰고 있었는데, 의자를 사게 된 과정을 너무 길게 써버려서 마지막에는 좋은 쇼핑을 해서 좋았다고 다소 황당한 문장으로 글을 끝마친다.
사실 처음 글을 쓰기 시작할 때는 글 제목도 그냥 '사람 한 명 살린 이야기'였다.


- 끝

2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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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그래서 저는 걷거나 야외에서 운동할 때 절대 이어폰을 끼지 않아요.

    제 컴퓨터 의자는 1인용 쇼파입니다. 푹신푹신해서 엄청 편해요.
    허리가 안 아프려면 허리 받침이 있어야해요. 받침이 있으면 척추가 바로 서고 S자가 되서 안 아파요. 구부정하면 허리도 아프고 목도 아프지요. 모니터는 가능한 높게, 눈이 15~20도 정도 위로 보는 위치에 놓아야합니다. 모니터 암을 쓰는게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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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답글
    1. 정말 순간 아찔 했습니다.
      무방비 상태에서 차와 와서 부딪치면, 아무리 천천히 오던 차라고 해도 사람은 넘어질 수도 있는데..

      지금 새 의자 쓰고 있습니다.
      확실히 좋습니다. ㅎㅎ
      소음도 안나고 허리도 전보다 훨씬 편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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